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테트리스 저작권 분쟁 (문단 편집) === 결말: 소송전 그리고 [[미하일 고르바초프]] === Elorg와 닌텐도는 안드로메다 소프트웨어, 미러 소프트 그리고 아타리 게임즈에게 "비디오 게임용 테트리스는 [[닌텐도]] 오브 아메리카에게 권한이 있기 때문에 유통하지 말라"라고 각각 텔렉스와 팩스를 보냈다. 그러나 아타리 게임즈에서는 자회사였던 텐겐의 명의로 패미컴용 [[텐겐 테트리스]]에 '''30만 개의 팩을 생산하는데 3백만 달러를 포함, 수백만 달러를 이미 개발, 패키징, 마케팅에 투자한 상태였다.''' 아타리 게임즈는 1989년 4월 13일, 테트리스에 대한 저작권 등록을 신청했고, '''4월 말 닌텐도에게 테트리스를 NES로 배포할 권리를 주장하면서 [[반독점법]] 혐의로 [[너 고소|고소했다.]]''' 닌텐도는 즉시 상표권 침해 혐의로 반소했다.[* 이 소송 말고도 [[아타리 게임즈]]가 [[NES]]의 보안용 락아웃칩인 10NES를 무단으로 복제해 사용하다가 [[닌텐도]]에게 저작권 침해 혐의로 고소당해 소송 중이었다.] 한편 [[일본]]에서는 아타리 게임즈로부터 일본 한정 아케이드 라이선스를 받은 [[세가]]의 아케이드용 테트리스가 엄청난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었다. 그리고 이 기세를 몰아 [[메가 드라이브]]용 테트리스 출시를 계획하고 개발까지 완료했으나 아타리 게임즈와 닌텐도의 소송전으로 출시를 포기했다.[* 이 때 세가에서 메가 드라이브용 테트리스를 대체하기 위해 개발한 게임이 바로 [[컬럼스]]이다.] 아직도 [[일본]]에서는 테트리스하면 세가의 테트리스를 본좌로 친다. 또한 미러 소프트 역시 Elorg의 결정에 반발했다. 미러 소프트의 대리인이었던 '''케빈 맥스웰(Kevin Maxwell)은 당시 소련의 서기장이었던 '''[[미하일 고르바초프]]'''에게 이 문제를 제기하겠다고 Elorg를 협박했다.''' 케빈 맥스웰의 아버지 로버트 맥스웰은 영국의 언론 재벌 미러 그룹의 총수였지만, 제 1차 중동전쟁 시절 이스라엘에서 체코슬로바키아의 무기를 수입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면서 이스라엘에 영향력 있는 인사가 됐고, [[니키타 흐루쇼프]], [[레오니트 브레즈네프]], [[유리 안드로포프]]의 연설 또는 책을 출판해 서방에 판매해 소련과도 밀접한 관계였을 뿐 아니라, 레바논 전쟁 덕에 고르바초프와 개인적인 친분을 쌓을 수 있었다. 로버트 맥스웰은 영국의 통상산업부 장관에게 이 문제에 대해 개입해 달라고 요청했다. 그리고 소련 크렘린궁의 당 고위 관계자들에게 이 관련 편지를 보냈고, 결국 소련 모스크바로 건너가 [[고르바초프]]를 만날 수 있게 됐다. 사업 얘기를 위해 고르바초프와 만나 주목적이었던 테트리스에 대한 얘기를 꺼냈고, 고르바초프에게서 '''그 [[닌텐도|일본 기업]]에 대해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대답을 받아냈다.''' 실제로 니콜라이 벨리코프에 대해 [[KGB]]의 내사가 이루어지기도 했으나 모두 무혐의로 결론났고 그의 직책도 유지되었다. 무엇보다 당시 나라가 거의 망하기 직전이라 정신이 없었던 고르바초프에게는 별로 관심도 없고 신경쓰지도 못할 주제였기 때문에 결국 더 이상 아무런 변화없이 '''립 서비스로만 끝나고 말았다.''' 법원에서 아타리 게임즈는 로버트 스타인의 원래 1988년에 맺은 계약인 컴퓨터에 대한 테트리스 라이선스를 인용하면서 [[패밀리 컴퓨터|NES]]는 패밀리 '''컴퓨터'''이므로 테트리스 게임을 NES에 내는 것이 정당하다는 주장을 폈다. 그러나 닌텐도는 1989년 4월 말 닌텐도 오브 아메리카의 부사장 하워드 링컨이 한 번 더 [[소련]]에 건너가 Elorg의 니콜라이 벨리코프 계약서의 의도에 대한 녹취록 및 여러 가지 증거 자료를 수집했고, 이를 법원에 제출했다. '''이 덕에 소송은 [[닌텐도]]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.''' [[1989년]] 5월 17일, 법정 소송중임에도 불구하고 [[텐겐 테트리스]]는 일간지 전면 광고 아래 출시됐고, 닌텐도는 법원에 판매 금지해 달라고 요청했다. [[1989년]] 6월 14일, '''법원에서는 닌텐도의 주장을 인정해 텐겐 테트리스의 제작 및 판매를 금지하는 예비 결정을 내렸다.''' 1989년 5월 17일 출시 후 1989년 6월 14일 법원이 판매 금지 결정을 내릴 때까지 텐겐 테트리스는 대략 5만 장이 판매됐다. 결국 11월 14일, 1심에서는 닌텐도의 승소 판결이 내려졌고, 아타리 게임즈는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지만 [[1993년]] 1월 역시 '''항소심에서도 닌텐도가 승소하면서, [[텐겐 테트리스]]에 대한 단종 명령이 내려졌다.''' 결국 아타리 게임즈에서는 텐겐 테트리스를 포기하고 도소매점에 풀린 카트리지를 전량 회수해, 나오지 못한 카트리지까지 총 26만 8천장의 카트리지를 파기했다. 그동안 시장에 나와있던 카트리지는 [[수집가]]들이 눈에 불을 켜고 긁어 모았고, 약 30년이 넘은 오늘날에는 신품 기준으로 무려 '''700달러 이상의 가격'''에 팔리고 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